그린 주변에서 쇼트게임하는 모습.

골프장에서 그의 애칭은 ‘설거지의 제왕’이다. 드라이버샷 거리가 평균 174m(190야드) 정도밖에 되지 않고 아이언샷도 ‘젬병’이지만 그린 근처만 가면 ‘훨훨’ 난다. 동료들이 “정말 설거지(쇼트게임) 잘한다”며 혀를 내두를 때가 많다. 210m(230야드)쯤만 드라이버샷을 날릴 수 있다면 매번 싱글 스코어를 낼 것만 같다. 물론 주변 동료들은 장타자가 되면 쇼트게임은 다시 엉망이 될 것이라고 얘기하지만. 그는 아마추어 골퍼의 전설로 불리는 보비 존스를 상당히 존경한다. 특히 존스가 한 말을 자신의 골프 좌우명으로 높이 받든다. ‘쇼트게임 잘하는 자가 롱게임 잘하는 자를 이기는 법이다.’ 이 얼마나 훌륭한 말인가. 210m(230야드)짜리 드라이버샷도 한 타이고, 18m(20야드)짜리 칩샷이나 0.9m(1야드)짜리 퍼팅도 모두 한 타다. 아무리 장타를 날리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3온 1퍼트’가 ‘2온 3퍼트’를 이기는 법이다. 가끔 ‘칩인’이 들어갈 때 상대가 실망하는 모습을 보는 것은 흥분되고 짜릿하다. 한 라운드에 두세 번 칩인(그게 칩인 파든지, 칩인 보기든지)을 하면 제아무리 장타를 날리는 동료라도 흔들리기 마련이다. 동료들이 가끔씩 쇼트게임 비법을 가르쳐 달라고 하지만 ‘타고난 감각 덕’이라고 한마디하고 만다. 그의 진짜 쇼트게임 비법을 안다면 놀라는 게 아니라 놀릴 게 뻔하기 때문이다. 사실 그는 진짜 ‘설거지의 제왕’이다. 애처가인 그는 집에서 설거지를 도맡아 한다. 설거지 실력(?)이 아내를 압도한다. 오죽하면 어린 아들이 설거지는 남자들이 주로 하는 것이라고 알고 있을까. 그는 진짜 설거지와 골프장에서의 설거지인 쇼트게임은 비슷한 점이 많다고 생각한다. 일단 힘을 빼는 것이다. 퍼팅이든 칩샷이든 쇼트게임을 잘하려면 헤드 무게를 느낄 줄 알아야 한다. 진짜 설거지도 마찬가지다. 손에 힘을 주고는 그릇을 제대로 씻을 수가 없다. 자칫 너무 힘을 주다가는 그릇이 깨질 수도 있다. 그는 아직까지 그릇을 깨 본 적이 없다. 아내도 그의 이런 업적(?)을 대단히 높게 평가한다. 골프장이든, 부엌이든 설거지에는 또 섬세함이 필요하다. 진짜 설거지를 자주 하다 보면 어느새 자신도 모르게 섬세함이 몸에 붙는다. 세제를 쓸 것과 물로만 씻을 것을 구분해야 하고 물로 깨끗이 헹군 다음 그릇을 가지런히 찬장에 놓아야 한다. 마지막으로 해야 할 게 싱크대 주변을 정리하는 것이다. 그릇만 씻는 것으로 설거지가 모두 끝나는 게 아니다. 이런 요령이 아내에게 사랑받는 설거지 비법 아닌 비법이다. 거기에 음식물 쓰레기까지 처리한다면 더 이상 좋을 게 없다. 아내들이 남편이 가장 해줬으면 하는 게 바로 저녁에 음식물 쓰레기 버려주는 것이란다. 골프장에서의 쇼트게임도 비슷하다. 그린 경사가 어떻게 되는지 차분하게 읽을 수 있어야 하고, 어느 지점에 공을 떨어뜨려, 어느 그린 경사를 따라 얼마만큼 구르게 할지 정확한 판단이 필요하다. 부엌이든 골프장이든 그가 생각하는 설거지 제1 원칙은 늘 같은 힘을 줘야 한다는 것. 쇼트게임에서 거리는 백스윙 크기로 맞춰야 한다. 절대 임팩트 세기로 쇼트게임 거리를 맞추려고 해서는 안 된다. 오늘도 아내에게 칭찬을 듬뿍 받은 그는 잠자리에서 내일 라운드를 꿈꾼다. “야! 칩인 버디다, 버디.”